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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3∙1독립선언서와 조선혁명선언 비교

by 존왓슨 2021. 7. 10.

3∙1 독립선언서와 조선혁명 선언 비교

두 선언의 내용과 의미를 비교해보자.

 

3∙1 독립선언서

기미독립선언서는 1919년 3월 1일 3∙1 운동을 기하여 민족대표 33인이 한국의 독립을 선언한 글로, 3∙1 운동의 신호탄이 되었으며, 일제 식민지 시대 민족해방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기점이 되었다. 3∙1 독립선언서는 대중화·일원화·비폭력을 독립운동의 3대 원칙을 기반으로 강력한 독립의 의지와 당위성을 내외에 선포할 목적으로 작성되었는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손병희는 독립선언서 작성의 대원칙으로 첫째, 평화적이고 온건하며 감정에 흐르지 않을 것. 둘째, 동양의 평화를 위하여 조선의 독립이 필요한 것. 셋째, 민족자결과 자주독립의 전통정신을 바탕으로 정의와 인도에 입각한 운동을 강조할 것 등을 내세웠다.

 

이제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살펴보자. 3∙1 독립선언서 원문의 첫 시작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여기에 우리 조선이 독립된 나라인 것과 조선 사람이 자주 국민인 것을 선언 하노라. 이것으로써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평등하다는 큰 뜻을 밝히며, 이것으로써 자손만대에 일러 겨레가 스스로 존재하는 마땅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도록 하노라.’ 여기에서는 기미독립선언서의 목적이 조선의 독립과 자주를 알리기 위한 것에 있음이 드러난다. 또, ‘동양의 평화가 중요한 일부가 되는 세계평화와 인류복지에 꼭 있어야 할 단계가 되는 것이라. 이것이 어찌 구구한 감정상의 문제이겠느냐!’라는 부분에서는 앞서 설명한 평화적이고 감정에 흐르지 않는 독립을 추구하는 독립선언서의 첫 번째, 두 번째 원칙이 드러난다.

 

조선혁명 선언

조선혁명 선언은 신채호가 1923년 1월 의열단의 독립운동 이념과 방략을 이론화하여 천명한 선언서이다. 의열단은 한국 독립운동가 13명으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로, 암살·파괴·폭동 등 폭력을 중요한 운동 방략으로 채택하였다. 그들은 파괴와 암살의 대상으로 ‘오파괴’와 ‘칠 가상’을 명시해두고 폭력적 독립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이 점에서 3∙1 독립선언서의 내용과 비교하여 확연한 차이가 드러나는데, 평화와 비폭력을 주장하는 3∙1 독립선언서의 내용과는 달리 조선혁명 선언은 혁명을 주장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조선혁명선언은 첫째, 일본을 강도로 규정하고 이를 타도하기 위한 민중 직접 혁명을 주장했으며 둘째, 3∙1 운동 이후 대두된 정치∙외교적인 부분에서의 독립운동 방략을 비판했다. 셋째, 조선혁명과 관련해 5가지 파괴와 5가지 건설의 목표를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원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상의 사실에 거하여 우리는 일본 강도 정치 곧 이족 통치가 우리 조선 민족 생존의 적임을 선언하는 동시에, 우리는 혁명 수단으로 우리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을 살벌함이 곧 우리의 정당한 수단임을 선언 하노라’라는 부분에서 혁명을 강조하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과 타협하려는 자나 강도 정치하에서 기생하려는 주의를 가진 자나 다 우리의 적임을 선언 하노라.’,’ '외교', '준비' 등의 미몽을 버리고, 민중 직접 혁명의 수단을 취함을 선언 하노라.’라는 부분에서 정치∙외교적인 부분에서의 독립운동 방략을 비판하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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